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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06/ 안녕 본문
위버멘쉬: Ubermensch (영어: Overman)_나무위키
프리드리히 니체가 삶의 목표로 제시한 인간상이다. 있는 그대로의 모든 것을 긍정할 줄 알아서 고통마저도 자신을 성장시켜 나가는 기회로 받아들이며 외부의 힘이나 절대자에게 의존하기보다 자신의 삶에 집중하며 스스로의 가치를 창조해내는 자.
오해하지 말아 할 것은 니체는 인간이 위버멘쉬를 향해 나아가야 된다고 말했지, 매번 위버멘쉬가 될 수 있다고는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인간은 짐승과 위버멘쉬 사이의 밧줄 위에서 위버멘쉬를 향해 나아가는 존재) 즉, 삶이 무기력해서 그 권태를 극복하고자 하는 필요가 있을 때 그 ‘나아감’이 본능적으로 요구되는 것이지, 인간이 말 그대로 ‘모든 것’을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고는 보지 않았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이 말은 자신의 행복 추구를 위해 그 어떤 짓도 저지를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위버멘쉬는 자신이 세운 가치관에 의해 스스로 몰락하는 자다. 동정에 기반을 둔 기존 도덕의 선악과 출발점이 다를 뿐 위버멘쉬는 자신을 제어하는 ‘자신만의’ 엄격한 가치관을 자신의 내부에 가지고 있다. 위버멘쉬는 자신 안에 존재하는 강력한 자를 존중하는 바, 이 강력한 자란 자신을 제어할 힘을 가지고 있으며, 말하고 침묵하는 법을 알고 있고, 자기 자신을 엄격하고 혹독하게 다루는 데서 기쁨을 느끼며, 엄격하고 혹독한 모든 것을 존경하는 자다. 그는 스스로를 존중하지 못하는 겁 많은 인간, 불안해하는 인간, 눈 앞의 이익에만 급급하는 인간, 편협하고 의심 많은 인간, 비굴한 인간, 남에게 아첨하는 인간,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모든 이를 경멸한다. 다시 말해, 위버멘쉬는 스스로를 채찍질하면서 그로 인해 괴로워하는 사람이 아니라, 도리어 자신을 제어하는 크고 작은 자기 긍정의 엄격함으로 삶의 고통을 극복하는데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 더 나아가 삶의 필연적인 면마저 어리숙하게라도 춤추고 노래하고 웃는 것으로써 극복할 줄 아는 건강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다.
한국어로는 초인이라고 번역하기도 하지만 니체가 가리키는 바는 ‘물리적, 물리적인 힘’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만든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 즉 ‘창조적인 힘’으로 끊임없이 몰아치는 가혹한 삶의 고통과 허무를 매번 노래하고 춤추는 마음으로 극복하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을 말한다. 즉, 삶이 가혹하다고 해서 이상적인 종교나 도덕, 이념으로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가혹하고 불합리한 삶을 있는 그대로 마주보고 그것을 극복하는 삶에서 의미를 찾는 사람, 심지어 그 고통을 기꺼이 자신의 성장을 위한 자극제로 삼으려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단어 그대로 힘이 센 초능력자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초인’이라는 번역은 오해의 여지가 있으므로, 최근에는 아예 발음 그대로 “위버멘쉬”라고 번역하는 추세이다.
오늘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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