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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아름다워

이중섭, 백년의 신화








동률님의 포스팅을 보고서,

아 빨리 가야겠다하고서 학원을 빼먹고

금요일, 내맘같은 조여진이랑 덕수궁 미술관을 왔다.


황소로 워낙 유명하신 분이라는 것만 알다가,

3년 전, 신남매 제주여행에서 이중섭 미술관을 다녀왔고,

이중섭의 편지와 그림들 책을 읽으며 가족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에 대한

마음을 아끼지 않는 아고리, 파파 중섭에 반했었다.

작품 원본뿐 아니라 편지도 볼 수 있다하여 정말 설렘을 안고 덕수궁을 갔다.



평일의 덕수궁은 사람이 적당히 있어 좋았다.

어여쁜 능소화와 귀요미 이언이와 사진도 찍고,



이언이 꽃단것 같은 모습도 찍으며 신나게 설레기.



이런 기념촬영은 동행이 있어야 찍을 수 있으니 맘껏 찍고,

멋진 이정재 배우님의 목소리를 들으며 전시를 관람했다.

난 전시회에 사진 촬영 불가가 좋다.

찰칵 소리는 전시에 집중하고 있는 타관람객에게 민폐라 생각한다.

하지만 얼마전 읽은 기사에선 대부분의 미술관에서 사진촬영을 허가하는 추세라고 한다.

아무래도 어떠한 것이든 이윤은 남아야겠지.

그리고 절로 홍보효과가 되는 거라 더 그렇겠지.

감사하게도 백년의 신화 전은 사진촬영 불가이다. 흐흐

이중섭 화백님의 초기작품부터 은화지, 통영, 편지화 등등 작품 원본을 보았다.




난 개인적으로 제2관 은화지 섹션이 참 좋았다.

작은 은화지에 새긴 그의 그림은 실제로 정말 작은 크기의 그림이었다.

아무래도 양담배 종이이다 보니 작을 수 밖에.

그 작은 종이에서 먹먹함이 느껴져서 그냥 멍-하니 보고 또 보았다.

특히 '두 아이' 그림이 정말 좋았다.



내 고향 통영의 모습도 담은 이중섭 화백님

감사하다. 내가 통영에서 태어난게 히히

그리고 황소 연작 그림 시리즈 등 그의 그림에서

강한 자신감이 나왔던 때가 통영(1953~1954)에서 였다고 한다.

통영은 그에게 많은 안식처를 준곳이었나 보다.



우리 화가님, 얼굴로 그림 그리십니까 흐

1954년 3월, 이중섭 화백님의 모습

통영 호심다방에서 4명의 개인전을 열 당시 모습이다.

아 느므 멋지신 분

화가로서의 그는 정직한 화공이 되고자 하여

그림 외에는 다른 일을 하지 않으려는 심지가 곧으신 분이셨으며,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빈 종이에 당신의 마음을 잔뜩 표현하시고,

편지지의 빈자리는 글로썬 표현되지 않은 마음을 그림으로 그린 사랑꾼이셨다.

그리고 친절히 편지지의 쪽수를 적으시는 자상함까지 :)





편지화 섹션에선 이벤트가 진행중이었다.

그리움에 대해 편지를 적어 저 틈으로 편지를 넣으면

매달 마지막주 수요일 3명을 추첨하여 전시 도록을 준다고 한다.

요즘 작년의 내가 그리워, 그리고 그가 그리워

그를 생각하며 편지를 쓰다보니

에이포 한장이 금방 채워졌다.

그리고 난 56년의 편지함에 응모했는데,

제발 당첨되어 도록을 받을 수 있기를




남덕군이 사기를 당함에 떠안은 빚과

이중섭 화백님의 개인전 실패(?)로 인한 정신적 고통으로 그는 이세상을 떠나셨다고 한다.

그런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구상 시인님의 시가 벽에 쓰여있었다.

먹먹했다.

한편으론 이런 친구가 있는 그가 부럽기도 했다.



전시를 나오며 마지막에 있었던

이중섭 화백님의 팔레트.



이렇게 그의 전시를 모두 다 관람하였다.

다 보고 나니 또 보고 싶다.

또 가야지.

시월, 개천절까지 하니 또 가야지.

몸이 많이 고된 순간까지도 그림 그리는 기법에 대한

시험을 많이 하신분.

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다.



ㅇ 전시명: 이중섭, 백년의 신화

ㅇ 기 간: '16.6.3 ~ 10.3(현충일, 광복절 휴무)

ㅇ 장 소: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저택이나 사원 같은 데 천장이며 벽에다 온통 그림을 그리고 싶어, 먹을 것만 준다면 말야!"